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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사랑회복수기 회복작 - 알코올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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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OO님 작성일19-08-26 14:46 조회21,2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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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의 삶이 이토록 힘들고 외롭고 고달픈 생활인지 정말 몰랐다. 한잔 술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처음 술을 접하게 된 것은 집을 나와서부터 시작되었다. 철없고 어린 나이에 술을 접했다. 열한 살 때 우연히 일하는 곳에서 어른들이 술을 권했다. 나이 들면서 더 술잔이 늘어났다. 스무 살 성인이 되며 술은 항시 나와 같이하며 외로울 때면 항상 술을 찾았다. 고향이 생각날 때면 건물 옥상에 올라가 혼자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술 마시며 많이도 울었다. 내 나이 11살 때 버림받은 집에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내 고향 마산을 바라보며 20대에는 술이 무엇인지 몰랐다. 마냥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다. 그때는 나의 누이동생이 어렸다. 월급을 타서 학비와 용돈을 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두 누이동생을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켰다. 비록 나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어머니 없는 죄로 나는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야간이면 한글을 배우고 한문,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힘들고 고달픈 생활 속에서 살았다. 지금은 두 누이를 다 시집을 보냈고 다들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돌아서보면 나의 생활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술과 도박, 사고로 철저히 망가지고 어느 한 곳에 마음 둘 곳 없는 한심한 인간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나의 잘못 때문에 모든 것이 남이 아닌 나 자신의 방탕함과 무능함 때문인 것 같았다. 이렇게 펜을 들어 글을 써 보는 것도, 무려 40년이나 되는 것 같다.

글을 쓰자니 손이 떨려서 잘 써지지가 않는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정말 혼수상태였다. 무슨 병원인지 모른 채로 정신 차려보니 한사랑병원이었다. 병명이 무엇인지 또 무슨 병으로 입원했는지 나는 정신 차리면서 알게 되었다.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 실천, 모든 것이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6개월이 지나 퇴원했다. 나는 마음 깊이 간직하고 열심히 살려고 생각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단주, 금연, 꼭 실천해서 당당하게 서고 싶었다. 실천을 했다. 일 년 넘게 직업을 잃은 채로 있으면서 회의가 느껴졌다. 한잔이라도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을 나는 망각하고 말았다. 그때는 한잔쯤이야 괜찮겠지했는데 아니었다. 처음 알았다. 왜 안 된다고 말했는지, 화가 났다, 내 자신에게. 이것 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병원 계단에서 울었다. 마누라 보기도 미안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또 나가서 무엇을 할까, 밖에서 나의 소문은 좋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자로 낙인찍혀 버렸다. 좋은 친구들, 형제들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괴롭고 슬펐다.

병원을 들락날락한 지도 벌써 4,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후 계속 마음으로만 꼭 실천해야지 매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성철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삼천 배해야 한번 만나 주신다고, 그러면 다들 만나기 전에 자기들이 깨달음 얻어서 간다고... 병동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자꾸 자아 상실, 자괴감, 우울감이 찾아오면 정말 힘들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그래도 지낼만하다. 교육도 받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으면 마음이 좀 평안해진다. 처음에는 이해 못 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는 것 같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이라고 주치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 자신을 자꾸만 숨겨왔다. 때로는 용기가 없어 할 수 있음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요즈음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힘겹다. 집 사람도 나와 같이 우울증에 협심증까지 있다. 퇴원해서 집에 있으면 괜히 눈물이 나곤 했다. 집 사람과 얼굴을 마주치면 안타깝고 서글퍼서 괜스레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우리는 왜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복지사에게 처음 내 속에 있는 말을 했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내 현실, 마음... 말하고 나니 편했다.

요즈음은 수요일 예배 시간에 자주 올라간다. 찬송가를 부르고 박수도 치고 성경도 읽고 목사님 이야기도 들으며 지낸다. 사람은 무릇 모른다. 내가 이런 글을 쓸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저 웃음이 난다. 옆 사람들이 놀린다. 그래도 괜찮다. 용기는 내가 내는 것이다. 반복되는 병원 생활이지만 나만이 할 수 있고 나 만이 해야 한다. 행동은 몸이 움직이는 것이지 말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왜 생각은 행동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 게으름에서 오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항상 게으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참 좋은 이야기가 있어 몇 글자 적자면 잊혀졌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은 마음인 거 같다. 나는 처음에 아주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리라유치원에 다녔을 때 영어와 일어를 배웠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집이 몰락하게 되면서 형제, 부모, 다 헤어져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자로 자살하셨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뿔뿔이 헤어져 살았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있을 때 나의 누이동생이 태어났고 나는 동생을 업어 키웠다.

지금의 나는 편안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다. 다리 두 쪽, 눈 하나, 간경화로 장애는 있지만, 더 나은 생활도 할 수 있고 그렇다고 희망을 저버린 것은 아니다.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생명의 소중함이다. 나보다도 못한 사람에게, 나도 그런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두서없는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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